인본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재명 - 전우용박사의 논설

논설·칼럼·SNS / 시사타파 / 2022-02-08 12:51:13
-재(財)는 돈과 재주를 합친 글자로서"사람이 자기 재주와 노력으로 버는 돈" 이라는 뜻.
-1919년“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이라 선언.
-"시험 봐서 얻는 권력" 은 세습되지는 않으나,"살아있으며, 평생 가는 권력"

재산(財産), 자산(資産), 재화(財貨), 화물(貨物), 화폐(貨幣), 투자(投資) 등에서 보듯, 한자 재(財), 화(貨), 자(資)는 모두 ‘부(富)’나 ‘돈’과 관련된 글자입니다. 이들 각각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글자 모양 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조개껍데기를 돈으로 썼기 때문에, 조개 패(貝) 자는 그냥 ‘돈’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재(財)는 돈과 재주를 합친 글자로서 ‘사람이 자기 재주와 노력으로 버는 돈’이라는 뜻입니다. 화(貨)는 ‘바뀌다’는 뜻의 화(化)와 돈을 합친 글자로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 또는 ‘돈 그 자체’라는 뜻입니다. 자(資)는 다음이라는 뜻의 차(次)와 돈을 합친 글자로서 ‘돈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돈을 버는 방법은 ‘재주껏 일해서 버는 것’과 ‘물건을 팔아서 버는 것’, 그리고 ‘돈으로 버는 것’ 세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이밖에는 남의 돈을 빼앗거나 훔치는 것 정도가 있을 겁니다.

중국인들은 영단어 캐피탈 capital이 ‘돈을 벌어 들이는 돈’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한자 자(資)에 대응시켰습니다. 캐피탈리즘을 재본주의나 화본주의, 또는 전본주의(錢本主義)가 아니라 자본주의로 번역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캐피탈의 속성으로 보자면, 매우 적절한 번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또 ‘자본주의(資本主義)’가 ‘인본주의(人本主義)’에 대립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했을 겁니다.

자본주의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집단 또는 사회가 ‘주식회사’입니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형식상 주주(株主)지만, 그들 사이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주식회사의 의사 결정은 ‘1인 1표제’가 아니라 ‘1주 1표제’의 원칙에 따릅니다. 100만 주 가진 주주가 100 주 가진 주주보다 1만 배 많은 권리를 행사하는 게 당연한 원칙입니다.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둘은 운영 원리가 같을 뿐 그 주체와 기본 이념은 전혀 다릅니다. 민주국가의 국민이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1표씩을 행사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삼권분립과 대의제도가 출현한 초기에는, 재산과 성별에 따른 ‘차등 선거권’이 오히려 일반적이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이미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이라고 선언했지만, 영국에서 가난한 노동자가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1928년의 일이었고, 그나마 여성의 참정권은 제한되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조차 1인 1표제의 ‘인본주의’ 원칙이 일반적으로 적용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인본주의적으로 개혁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사람의 피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둘이 근본으로 삼는 것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인본주의적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것은,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 소외, 불평등, 불공평과 불공정 등의 문제를 민주주의가 보완해 주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부자가 될 기회를 ‘공평하게’ 주는 체제이자 제도라는 믿음은 일반적이지만, 귀족제도가 만들어지던 당초에도 농민이 귀족 지위를 얻을 가능성은 꽤나 높았습니다. 어떤 체제나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체제와 제도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익을 얻는 ‘기득권 세력’이 생겨나면서 기회가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건 역사의 철칙에 가깝습니다.

한국 자본주의도 한 세기 넘는 역사를 거치면서 ‘기회의 평등’이라는 구호가 신화(神話)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 ‘특혜 입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재벌가 3세나 4세가 자기 집안 회사에 특혜 입사하여 초고속 승진하는 건 당연하게 여깁니다.

가족제도와 상속제도는 인류가 만들어 현재까지 유지해 온 것들 중 가장 오래된 사회제도입니다. 이들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도 있으나, 이는 인류의 존속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도 진지하게 시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든 아니든,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신분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새로운 신분 질서’라고 했지만 사실 이 질서는 인류에게 익숙한 고대적이거나 중세적인 신분 질서와 아주 비슷합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한 세기 남짓밖에 안 된 우리나라에서도, 재벌, 언론사, 사학재단, 대형 교회 등에서는 이미 3대, 또는 4대 세습이 진행 중입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스펙’을 쌓기 위해 고생하고서도 취업이 안돼 낙망하는 수많은 젊은이가 있는 반면, 태어나자마자 미래의 회사 대표, 미래의 재단 이사장, 미래의 건물주 자리가 예약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본’만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진짜 ‘살아있으며 죽지 않는’ 권력은 ‘세습되는 권력’입니다. 이 권력의 눈에 잘 보여야, 취업도 되고 하청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대와 중세에 그랬듯이, 세습 권력 아래에는 ‘전문가 권력’이 있습니다. 시쳇말로 ‘시험 봐서 얻는 권력’입니다. 입사 시험에 합격해서 대기업 간부가 된 사람들이 ‘돈 버는 일’에만 열중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검사, 판사, 고위 공무원, 언론인 등 ‘공익’에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조차 돈에 대한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지금 우리가 보고 겪는 현실입니다.

사회 전체가 돈을 향한 욕망에 지배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세습 권력과 결합하는 것도 어쩌면 시대의 순리일 겁니다. ‘시험 봐서 얻는 권력’은 세습되지는 않으나 ‘살아있으며, 평생 가는 권력’입니다.

반면, ‘선출되는 권력’은 짧은 시간 동안 ‘지나가는 권력’일 뿐입니다. 이 권력이 ‘세습되는 권력’이나 ‘평생 가는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인본주의의 가치가 살아남을 것이냐 소멸할 것이냐가 결정됩니다. 이 권력은 ‘민영화’라는 명목으로 세습권력이 더 많은 이익을 얻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세습권력과 대립하거나 갈등한다는 이유로 ‘평생 가는 권력’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권력’이나마 인본주의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해야, 보통 사람들에게도 ‘사람답게’ 살 여지가 생깁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1인 1표제의 원칙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특별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걸 바꾸지 않는 한, 돈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꿀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최저 임금 규정도 없이 주 120시간씩 일하면서 부정식품 이하라도 사 먹어야 하는 사람”이 존재해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반(反) 인본주의’입니다. 최저임금제나 하루 8시간 노동제, 식품과 의약품 안전에 대한 규제가 전 세계에 통용되는 ‘보편 원칙’으로 확립된 것은, 이런 것들이 ‘1인 1표제에 의한 민주주의’와 함께 ‘인본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후보 장모의 양평 땅 개발 과정에서도, 부산의 엘시티 개발 과정에서도, 공공이 환수한 몫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문제의 대장동 개발과 관련해서도 전현직 검사와 판사들이 수십억원씩 받은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100% 민영’을 주장했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모두 ‘세습되는 권력’과 ‘평생 가는 권력’, ‘지나가는 권력’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민영’이라는 명목으로 ‘자본’이 100% 다 가져 가려 했던 이익의 일부를 공적으로 환수하여 시민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는 가난해서 교복을 못 사 입는 학생들을 위해 교복을 무상으로 지원했고, 가난한 집 아이들도 학교 급식 시간에 과일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는 가난이 인간다움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인본주의 철학'을 행정으로 실천해 왔습니다. 모두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그 말을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 돈을 선뜻 내놓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한다면 모르는 사람도 도울 수 있습니다. 모두가 돈에 쫓기고 돈을 쫓으면서 사는 세상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인본주의‘의 핵심입니다. 진짜 ’살아 있는 권력‘들을 견제하면서 인본주의의 가치가 살아있는 세상을 지킬 후보는, 이재명 뿐입니다.

[ⓒ 시사타파(SISATAPA 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